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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일지

명상일지#1 호흡을 100번하는데 걸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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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가의 길을 가겠다 마음먹은 지 꽤 됐지만 아직도 명상을 습관으로 만들지 못했다. 어떠한 행위 뒤에 습관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의식적으로 명상할 시간을 만들어야만 명상을 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은 잠을 자기 전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명상 하기로 했다. 

 

이번 명상의 목표는 호흡을 100번 하는데 걸리는 시간 측정이다. 수업시간에 교수님의 말씀 중 기억에 남는 게 하나 있었는데, 장수를 대표하는 거북이와 학은 1분에 3번 정도 호흡을 하고 인간은 보통 6~7회 정도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외에 인간보다 수명이 짧은 반려동물은 셀 수 없이 많은 들숨 날숨을 반복한다고 한다. 그만큼 호흡의 깊이와 횟수가 수명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주 느린 호흡으로 100회 호흡을 하기로 한 것이다. 계산상으로는 대략 한 호흡에(여기서 한 흡이란 들숨 날숨을 포함한 1회 반복이다.) 10초 정도 걸리니 1000초 분으로 환산하면 16분 40초가 걸려야 했다.

 

 

나는 차 한잔을 마신 뒤(왠지 따뜻한 차를 마시면 더욱 깊은 상태의 명상이 될 것만 같았다.) 소파에 자리를 잡고 간접등 하나를 켠 체 편안한 자세로 눈을 감고 호흡을 시작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1개, 그리고 두 개, 이어서 3개... 온전히 100회에만 집중할 수는 없었다. 100회 중에 여러 가지 것들이 느껴졌는데, 초반에는 몸의 느낌이었다. 편안한 자세에서 허리를 편 덕분인지 트림이 올라왔고, 호흡할 때마다 뱃살이 걸리적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10회가 조금 지났을 때부터 온갖 잡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일 가까운 기억인 강의실에서 명상하는 장면부터 오래전 좋아했던 사람과의 추억, 어제 결제한 신발에 대한 생각까지.. 지금 기억나는 것은 이것뿐이다. 기억은 이 정도였지만 이 생각 안에 있을 때의 감정은 설렘과 편안함이었다. 좋으면서 긴장되지 않는 상태, 딱 그 상태의 느낌이 떠올랐다. 생각이 지나가게 하는 방법은 다시 세고 있는 호흡의 횟수로 돌아오는 것이다. 만약 어디까지 셌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면 기억나는 부분부터 다시 세기로 했다. 이십일... 이십이... 이렇게 했다.

 

숫자가 80번대가 넘어갈 때부터는 들리지 않던 잡음이 들렸다. 생각의 잡음이 아닌 실제로 전자기기에서 나는 백색소음과 화장실의 환풍기 소리였다. 늘 TV 소리를 곁에 뒀던 나로서는 이 소리가 나는지도 인식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100에 가까워졌을 때 소리는 더 크게 들렸고, 이때부터는 빨리 저 소음을 없애야겠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자연스럽게 나머지 100까지의 호흡이 빨라졌다. 즉 이는 짧은 명상 상태 안에서도 감각 스위치가 ON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감각이 ON이 되었을 때 현재의 흐름이 느껴지고 이 흐름은 자극이 되어 다시 생각 속으로 넘어가 우리의 호흡이 빨라지게도 하고 다시 느려지게도 하는 역할이 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마지막 100번째 호흡은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고로 긴 호흡을 마시고 뱉었다. 그리고 눈을 살며시 떠 휴대폰 스톱워치 시간을 확인했다. 과연 100번 호흡을 하는 시간은 얼마나 걸렸을까? 휴대폰 속 스톱워치는 16분 05초로 나왔다. 계산적으로 100회의 호흡은 16분 40초가 나와야 하는데 이보다 짧게 나왔다는 것은 어느 순간 내 호흡이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일정하지 않았음을 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좋았던 것은 오차범위 오차범위 5% 안에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호흡의 실험은 앞으로의 명상 과정에도 큰 도움이 될 듯하다. 

 

천천히 그리고 깊은 호흡을 할 수 있는 그날까지 명상 수련을 계속해야겠다.

 

"오늘도 명상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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