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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일지

명상 일지#5 판단 하지도 않고 분석 하지도 않는 연습 그리고 삼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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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상을 할 때 의도를 두고 시작한 적도 있었고 의도 없이 그냥 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교육이 아닌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으로 배운 지식으로 시작한 터라 그런 명상들이 어떠한 명상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명상교육 중 교수님께서 명상의 종류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주셨다. 원래 명상이라는 것은 따로 분상을 할 때 의도를 두고 시작한 적도 있었고 의도 없이 그냥 했던 적도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교육이 아닌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으로 배운 지식으로 시작한 터라 그런 명상들이 어떠한 명상인지 자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며칠 전 명상교육 중 혜명 교수님께서 명상의 종류에 대한 강의를 진행해주셨다. 원래 명상이라는 것은 따로 분류되어 있지 않았으나 미국으로 넘아가면서 명상의 종류가 세분화되었다고 했다.

 

명상의 종류에는 크게 집중 명상과 알아차림 명상으로 나뉘고 하위 카테고리로 8가지의 명상으로 더 세분화 시킬수가 있다. 서두에 말한 의도가 있었던 명상은 아마 집중명상에 해당되었던 것이었고, 의도가 없었던 명상은 알아차림 명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집중명상 중에 만트라 명상이 있는데, 이는 특정한 뜻이 담긴 진언을 반복하는 명상이다. 이 또한 가볍게 읽었던 최강의 명상법(지은이 와타나베아이코 불광출판사)이라는 책에서 배워 적용한 경험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날의 교수님의 교육은 내 명상 경험에 살을 붙여 명상 이론이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알아차림 명상은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들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얼마전 불안한 감정에 휩싸였을 때 왜 불안한지 분석하려 애썼었는데, 보는 시점에 따라 그것을 파고드는 집중명상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불안의 원인은 찾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집중해서 애쓰는 명상이 아니라 그저 불안했을 때의 내 심정을 바라보는 알아차림의 명상으로 접근해야 했다. 즉, 틀렸다라기보다 수행 방법에 따라 명상법이 달랐던 것이었다. 그렇기에 불안에 대해 연구하는 생각보다 마치 먼 우주에서 불안해하는 나라는 주인공을 바라보며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저 지켜만 보면 되는 것이었다. 내가 (신기하게 눈을 감으면 나라는 존재는 1인칭이 아니라 3인칭이 되었다.) 어떤 반응을 하던 개입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물론 감정에 휩싸이지 않는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판단하거나 분석하지 않아야 하는 명상수행법 중 하나였다.

 

 이날의 수업은 기초이면서도 내 가슴을 가장 크게 울린 내용이었다. 명상을 수행방법에 따라 나누고 오롯이 온몸으로 느껴보는 것. 판단하지 않고 분석하지 않는 것. 

 

 나는 집으로 돌아와 어떠한 의도도 목적도 두지 않은 흘러가는 명상을 시작했다. 물론 이 조차도 목적을 두지 않으려는 목적이 있는 명상이라고 할수도 있겠다. 어찌 되었든 배운 대로 알아차림의 명상을 시도하기로 했다. 이 명상에 있어서 의도(비 판단, 비 분석)는 두되 집착(노력) 하지 않으려 했다. 그리고 바라보면서 나는 속으로 되뇌기로 했다.

 

 만약 어떠한 소리로 예민했다면 "아, 지금 소리때문에 예민하게 느끼고 있구나~", 혹은 생각이 복잡하다면 "낮에 했던 생각으로 복잡하게 생각하는구나~" 하며 눈을 감고 느끼는 것들의 끝에 "~~ 구나"하며 붙이기로 한 것이다. 늘 하던 대로 차 한잔을 마시고 주변 불을 소등하고 향초 하나만을 켠 채 명상을 시작했다.

 

 역시나 처음에는 다양한 소리가 거슬리기 시작한다. 홍일 선생님의 말씀처럼 명상을 하자마자 나는 전자제품에서 나는 전자음이 거슬려 지금 당장 끄고 싶은 충동이 올라왔다. 하지만 그 행동을 시작으로 나는 소리를 없애고자 하는 집착에 빠질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전자음이 들리는 내 마음을 보며 "아, 냉장고의 전자음을 내가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구나.." 했고 공기청정기의 모터 소리를 들으며 "아, 모터 소리에 의식을 집중하고 있구나"하며 그저 내 감각이 느끼는 대로 지켜만 봤다. 그렇게 몇 번씩 반복하다 보니 소리에 예민한 나는 사라졌다. 소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저 소리에 반응하는 내속의 시끄러움이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다음으로 생각하는 나를 볼수 있었다. 감정에 솟구쳤던 한 가지 생각은 오늘 낮에 어머님께 발생했던 일 때문이었는데 그 상황이 반복 재생되고 이후 대처 상황에 대한 그림이 마구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감정도 격해짐을 느껴졌다. 아무래도 가족과 관계있는 일이다 보니 어머님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처럼 느껴졌나 보다.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문 생각 끝에 나는 이 또한 내가 만들어낸 하나의 환상임을 자각하고 위의 룰처럼 "아~ 엄마를 괴롭게 하는 것들 때문에 나 또한 감정이 격해졌구나"하고 3자의 입장으로 바라봤다. 그 외에도 다양한 생각이 피어올랐는데 그때마다 그러한 룰을 계속 반복했다.

 

 그렇게 반복에 반복, 나를 바라보고 알아차리는 자각의 반응을 반복하다보니 어느 순간 어떠한 생각도 나지 않고 어떠한 감각도 느끼지 않는 어떤 뭔가가 느껴졌다. 이건..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 뭔가 생각하는 내가 아니었고 어떠한 소리나 감각에 예민해진 나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모르겠다. 근데 그 안에서의 기분은 아마도 중립이었던 것 같다. 무의식의 공간이었는지 아니면 잠시 잠에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눈썹 위에서 느껴진 가려움 때문이었다. 가려움조차도 감각이기에 위의 룰처럼 바라보기로 했는데 그 순간만큼은 나도 모르게 손이 올라가 가려운 부분을 긁고 말았다. 당황스러웠다. 찰나의 순간에 바라보기도 전에 손이 올라간 기분이었다. 아마도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 명상의 궁극적인 목표인 삼매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감히 하게 되었다.

 

 삼매라는 것은 잡념을 떠나서 한 가지 대상에 정신을 집중시키는 경지에 도달한 것인데, 이때에는 바른 지혜를 얻으며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아마도 몰입 그 이상의 위치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삼매와 몰입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떠오른 건데, 얼마 전 봤던 디즈니 영화 [소울]에서 주인공이 피아노 연주를 하며 몰입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무아지경의 상태가 된다. 어쩌면 명상을 하면서도 그런 경험들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아직 못 보았다면 그 영화를 강력 추천한다. 아마 명상뿐 아니라 철학적인 장면이 많아 명상을 실천하는 모든 이에게 큰 공감을 가져다줄 것이다.

 

 아무튼 잠깐 이야기가 옆길로 샜는데, 그렇게 가려움을 느끼며 나는 눈을 떴고 스탑워치로 확인한 명상시간은 36분이 되었다. 너무 신기했다. 36분이나 내가 명상에 빠져있었다니.. 이런 식이라면 아마도 근육이 붙어가듯 수행을 거듭해 나가면 많은 시간을 명상수행에 집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래 앉아있고 많은 시간을 명상한다고 그 깊이도 깊어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말한 양질 전환의 법칙에 따라 수행한 만큼 명상의 깊이가 깊어질 것이라 믿는다. 깨달음의 경지까진 아니겠지만 삶 속의 많은 것들이 변화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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