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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일지

명상일지#3 불안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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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득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하루를 아주 알차게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잠깐 시간이 빈 틈으로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다. 이유가 궁금했다. 불안감이 올라오기 전까지 하루를 돌아보면 아침에 일어나 따뜻한 물로 몸을 깨우고 요가원에서 하타요가 수련을 했다. 이어 집으로 돌아와 식사를 하고 공원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산책과 동시에 공원에 마련된 철봉을 이용하여 운동을 했고 자전거를 이용해 내일 수업 중에 먹을 과자를 사러 갔다. 과자를 집에 놓고 다시 자전거를 타며 봄의 정기를 만끽했다. 집안 정리를 하고 저녁 식사를 했다. 아주 알찬 하루였다.

 

 그런데 이 식사후 잠깐의 빈 시간에 불안감이 엄습한 것이었다. 평소 불안증세를 자주 느끼는 편은 아니어서 신체의 큰 변화는 없었지만, 왠지 모를 조급함에 내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이 느껴졌다. 뭔가를 또 해야 하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라 생각하여 저녁 일과를 진행하고 샤워 후 불안에 대해 곱씹으며 명상을 준비했다.

 

 오늘은 따로 숫자를 세거나 타임을 맞추지 않았다. 대신 집의 모든 불을 소등하고 향초를 켰다. 그리고 차한잔을 마신 후 명상을 시작했다. 집 밖 복도에서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 옆집에서 물 쓰는 소리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나는 호흡에 집중하며 왜 불안했는지를 떠올렸다. 불안을 없애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어차피 불안은 없어지는 마음이 아니란 걸 안다. 그냥 알찬 하루 중 왜 불안한 마음이 피어올랐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커졌을 뿐이다. 나 자신과 대화를 시작했다. 

 

 '왜 불안했던 걸까?'

 

 하루를 또 곱씹어 보았다. 일을 해야한다는 압박감도 있었고, 내일 가져갈 다과가 다른 학우들께 실망을 드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다가오는 월세에 대한 마음도 떠올랐다. 이것들이 나를 불안하게 만든 걸까? 하는 의구심이 더 깊어졌다. 더 옛날의 기억을 뒤적거려봤다. 늘 빨리빨리를 외치던 아빠의 영향이 조급함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남들 눈치 보는데 급급해 나 자신을 잃어버린 지난날들이 떠올랐다. 혹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시도 쉬는 시간을 허락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던 걸까? 많은 원인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이유는 딱 이거다 하고 나타나지는 않았다. 다시 호흡에 집중했다. 

 

 생각을 벗어나 잠시 신체 감각에 집중했다. 코끝으로 들어가고 나가는 공기의 흐름을 느껴보고 가슴을 통해 호흡이 들어갈때 심장의 두근거림도 느껴봤다. 불안에 비해 내 심장박동은 그리 빠른 편은 아니었다. 아니, 평온하다 싶을 정도로 불안과는 거리가 먼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나는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번 신체를 돌아봤다. 가슴 밑으로 뭔가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박동수는 일정하나 뭔가가 꽉 막힌듯한 답답함이 가득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요즘 급하게 불어버린 뱃살로 인한 답답함인지 아니면 심리적인 요인으로 거짓 느낌을 느끼는 것인지 인식이 잘 되지 않았다. 혹은 저녁식사가 아직 소화가 다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었다. 

 

 아무튼 불안의 원인을 바라보며 다시 나는 호흡에 집중했다. 또 생각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어떠한 생각이라고 딱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적당한 바람과 파도가 있는 바다위를 항해하는 기분이었다. 점점 불안에 대한 집착은 흐려졌고 바다 위에 하늘에서는 옛 기억들이 영화처럼 상영되며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생각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쯤 다리가 저린 게 느껴졌고 이 정도면 대략 15분 정도 되었을 것 같았다. (전에 요가를 하면서 양반다리를 했을 때 15분 정도면 다리가 마비되는 경험이 있었기에..) 약간의 오기를 발휘해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앉아있기로 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을때쯤 눈꺼풀이 살짝 올라갔고 그 사이로 켜 둔 향초의 불빛이 들어왔다. 흐릿한 모습에서 점차 불빛은 뚜렷해지며 내 명상은 끝이 났다. 이때의 멍한 느낌이 참 좋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고 다시 어두운 화면만 있는데 조명은 켜진 영화관에서의 느낌이랄까? 뭔가를 보고 즐겼기에 뭔가를 했구나 싶지만 멍한 느낌. 시선을 돌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봤다. 스톱워치 시간은 33분을 지나고 있었다. 

 

 15분정도밖에 안 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생각과 감각에 집중하다 보니 30분이라는 시간을 훌쩍 넘겼던 것이었다. 신기한 경험이다. 명상음악을 켜지도 않았고 그저 집 분위기만 어둡게 바꿨는데 집중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외부 자극이 많은 야외에서보다 깊은 명상 상태로 진입한 것 같다. 다리 저림의 자극이 나의 명상을 방해한 것 같긴 하지만 아마 더 깊은 명상으로 갈 수 있는 어떠한 힌트를 얻었다. 요가를 통해 가부좌 자세에 대한 고민을 조금 더 해보고 명상에 있을 때 온전히 명상에 빠질 수 있는 방법을 조금 더 연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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